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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상)(莊烈王后國葬都監儀軌 (上)) 상세보기 이전으로 설명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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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숙종 14) 8월~12월에 거행된 인조(仁祖)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1624~1688)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莊烈王后國葬都監儀軌)』상하 2책 중 상책에 수록된 반차도이다. 장렬왕후는 1688년 8월 26일 향년 65세로 창경궁 내반원(內班院)에서 승하하였다. 왕후의 빈전은 9월 1일 같은 궁 환경전에 차려졌고, 12월 15일 발인하여 16일 동구릉(東九陵) 경내에 안장되었다. 왕후의 우주는 같은 날 창경궁 문정전에 마련된 혼전에 모셔졌다.
이 반차도는 빈전에 모셔두었던 장렬왕후의 혼백함과 재궁을 받들고 산릉으로 향하는 발인 행렬의 반차를 그린 것이다. 행렬의 기본 구성은 앞서 있었던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의 발인반차도와 동일하다. 그러나 15세에 인조의 계비가 되어 효종(孝宗)·현종(顯宗)·숙종(肅宗) 대를 거치면서 왕대비, 대왕대비로서 지내온 장렬왕후의 이력이 발인 행렬에 드러나 있다. 장렬왕후는 생전에 총 4회의 존호를 받았는데, 각각의 책·보를 요여에 봉안하여 길의장 행렬에 배치하였다. 순서는 네번째 병인년(1686, 회갑 기념으로 강인(康仁)이라는 존호를 받음) 존숭 시 받은 옥책·옥보 요여부터 세번째 병진년(1676, 현종 부묘 후 휘헌(徽獻)이라는 존호를 받음) 존숭, 두번째 신축년(1661, 효종 부묘 후 대왕대비로서 공신(恭愼)이라는 존호를 받음) 존숭, 첫번째 신묘년(1651, 인조 부묘 후 왕대비로서 자의(慈懿)라는 존호를 받음) 존숭, 그리고 1638(무인년) 가례 시의 책·보와 교명·고명 요여 순이다. 또한 인조의 두 아들인 숭선군(崇善君)과 낙선군(樂善君)이 대여 뒤 호종 행렬에 섰다.
현재 분상용 의궤 반차도는 전하는 예가 없기 때문에 이 반차도는 어람용 의궤에 수록된 유일본 반차도이다. 이 시기 어람용 의궤 반차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인물과 가마, 각종 기물을 유형화하여 일일이 그리고 세밀하게 채색하여 완성하였다. 각 상은 크기나 자세에서 편차가 없이 균일하여 매우 정연한 화면을 보여 준다. 또한 단면으로 묘사된 중앙 열의 가마류, ‘정(井)'자형 가마채 배치, 상하로 포개어 올린 가마꾼 포치에서 보듯 화면에 공간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봉거군과 의장수, 가마꾼들은 움직임이 두드러지지 않으며 얼굴도 타원형으로 단순화해 버렸고 손은 소매 속에 넣은 것처럼 생략하였다. 채색에서는 길의장 행렬의 의장수와 가마꾼의 자색 옷, 군관과 흉의장 가마꾼의 백색 옷, 관원의 누런 색 참최복 색깔, 관원들의 청색 옷 등이 잘 구분되어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제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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